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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어 인터뷰

담당자 전혜윤
전화 02 333 4151(대표번호)
이메일 hyjeon@shoestring.kr

“저보다 더 좋은 호스트 패밀리를 만날 오페어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거에요!” 라고 호언장담하는 그녀.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놀러 오라며 한국으로 향하는 그녀의 두 손에 미국 왕복 항공권을 쥐어줬던 그녀의 호스트 패밀리는 아직도 그녀의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준단다. 세 쌍둥이와 함께 했던 그녀의 파란만장한 오페어 스토리를 들어보자.


처음에 오페어 프로그램을 어떻게 알고 신청하셨어요?
외국에 나가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알아보던 중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됐어요.


오페어 프로그램의 어떤 점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떠나기로 결심하게 되셨나요?
그 당시 저는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가정에 머물면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이었어요.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아이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점 역시 부담스럽지 않았고요. 아이 돌 본 경험 200시간도 이미 준비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오페어로 지원할 때 특별히 어려운 점도 없었답니다.


함께 지냈던 호스트 가족에 대한 소개를 부탁 드려요.
저희 아이들은 처음 만났을 당시 열 살이었고, 세 쌍둥이에요. 너무 똑똑하고 잘생긴 Eamon, 따뜻한 마음을 가진 개구쟁이 Turker, 그리고 장애를 가졌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사 같은 아이 Bailey. 이렇게 남자아이 둘, 여자아이 한 명이었어요. 세 아이들 모두 호스트에게 교육을 잘 받아서 저를 무시하거나, 말 안 들어서 속 썩인 적 없는 착한 아이들이에요. 쌍둥이지만 세 명 다 각각의 개성이 뚜렷했고, 이 아이들 덕분에 일년이 너무 행복했답니다. 음…저희 호스트 가족은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체험을 위해 오페어가 필요하다고 해서 계속 오페어를 썼던 가정이었어요. 제가 일곱 번 째인가 여덟 번 째 오페어였고, 저 이전에 이미 체코, 독일, 슬로바키아, 아프리카, 태국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오페어들과 함께 지내며 언어, 음식 등과 같은 다른 나라 고유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우길 원했죠. 저희 호스트 가족은 정말 최고라고 자부해요, 저만큼 좋은 호스트 가족을 만난 오페어는 아마 없을 거에요! 제가 미국에서 돌아온 지 3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제게 엽서도 보내고, 생일이면 선물도 보내주고, 이메일과 전화로 소식을 주고 받고 있거든요.


막내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힘들거나 어렵지는 않았나요?
사실 매치할 때부터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솔직히 미국에서 처음 Bailey를 만나던 순간까지 그 걱정을 했거든요. 하지만 제가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것이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할 정도로 Bailey는 착하고 예쁜 아이였어요. 지적 장애가 있어 발달이 좀 늦었고, 발작 증상이 있어서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었는데, 그 아이를 돌볼 때에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호스트들이 잘 알려주셔서 별 문제가 없었어요. 고집이 세서 자기 뜻대로 안 될 때는 울고 불고 했었는데 다른 아이들도 그 정도 땡깡은 부리는 거 아니겠어요?!


아이들과 어떤 활동(놀이)을 주로 하셨어요? 아이들을 돌보면서 있었던 재미있는 사건, 혹은 잊지 못할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해 주세요.
남자아이들은 저랑 야구하는 걸 좋아했고, 비치에 가면 럭비도 자주 했어요. 막내는 여자아이라 그런지 도라(Dora) 라는 인형을 가지고 함께 놀이 하는 걸 좋아했어요. 아이들이 저보고 놀이공원이란 별명을 지어 줬는데,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놀이를 항상 즐겁게 같이 해줘서 그런 별명을 지어준 것 같아요. 특별히 잊지 못할 경험은…사실 저한테는 오페어로서 미국에서 보낸 일년이 모두 잊지 못할 경험인데… 아이들이 제 생일에 저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새벽같이 일이나 아침을 준비해서 제 침대로 들고 와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어요. 아, 저희 호스트에게 감동 받았던 큰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하이브리드 차가 막 출시되고 호스트들이 환경을 생각해서 그 차를 새로 뽑았었거든요. 저는 보통 그 차를 운전 안 하는데 그날은 다들 여행준비로 바빠서 제가 그 차에 기름을 넣었어야 했어요. 그런데 기름을 넣고 주유소를 빠져 나오다가 살짝 부딪혔는데 차의 옆구리가 움푹 들어갔더라고요. 너무 놀라고, 당황하고,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집에 가서 솔직히 말씀드렸더니 호스트들이 오히려 놀란 저를 달래주셨어요. “평소에 네가 하는 행동을 보면 우리 집 물건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아는데, 차가 이렇게 됐다면 정말 실수였겠구나. 괜찮으니까 놀라지 말아라” 하셨어요. 수리비가 백만 원이 넘게 나왔는데도 괜찮다고 하셔서 얼마나 죄송했는지 몰라요. 호스트한테 무슨 일이든지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죠.


호스트 가족과 함께 했던 나들이, 여행, 크리스마스 등의 특별한 추억이 있으신가요?
한국으로 돌아오기 바로 전 2주 동안 가족과 함께 미국 동부를 여행했어요. 동부 제일 꼭대 기의 메인에서부터 시작해서 버몬트, 뉴욕 롱아일랜드, 뉴저지, 버지니아, 사우스 캐롤라이나, 노스 캐롤라이나, 플로리다, 마이애미 등 13개의 주를 다녔어요.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이죠. 그 밖에 나이아가라 폭포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이들 외갓집에도 같이 갔었어요. 부활절에는 온 친척들이 함께 모여서 성대한 저녁식사 겸 파티도 했었고, 할로윈 파티 할 때 제가 한복을 입어서 엄청 인기가 좋았던 적도 있었네요. 호스트 가족과 여름에 저희 집 마당에서 했던 바비큐 파티며, 여름 휴가 때 beach house에서 지낸 것도 참 즐거웠던 추억이에요. 독립기념일에 있었던 불꽃놀이도 신났었죠. 가족들이 떠나는 여행에 초대를 받으면 저는 항상 참여하려고 노력했어요. 미국에 오페어로 간 이유가 미국 사람들의 문화를 배우고,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호스트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호스트 가족의 한국 음식 사랑이 유별났다면서요? 그리고 호스트 가족에게 받은 아주 특별한 선물이 있다고 하셨는데?
네, 저희 호스트파더가 한국 음식을 무척 좋아했고(김치도 잘 먹었답니다!), 다른 가족들도 좋아하고, 잘 먹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2주에 한 번씩 Korean dinner night을 가졌어요. 한인 마트에 가족들이랑 같이 가서 장 보고, 제가 잡채, 고등어조림, 김밥, 볶음밥, 감자볶음, 계란탕 등을 만들어서 같이 먹었어요. 저희 호스트에게 받은 특별한 선물은...먼저 제가 오페어로 있는 동안 늘 한국에 있는 저희 부모님더러 미국에 놀러 오라고 얘기하라고 졸랐거든요. 그래서 결국 저희 엄마, 외숙모와 사촌동생이 미국에 와서 일주일간 저랑, 호스트 패밀리와 함께 머물렀어요. 저희 호스트한테 참 고마웠죠. 또 하나는 제가 오페어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선물로 받은 미국 왕복 항공권이에요! 덕분에 한국 들어온 지 일년 뒤에 다시 미국에 다녀왔어요. 공항으로 리무진까지 보내줘서 너무 편하게 다녀왔고,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의 모든 경비를 호스트가 지불해주셨어요. 미국에 다시 갔을 때 다른 곳을 다니기보다는 그 동안 보고 싶었던 저희 아이들과 같이 있고 싶다라는 생각뿐이어서 저희 호스트 가족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냈죠.


미국의 어느 지역에 계셨나요? 머무르셨던 동네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해주시겠어요?
저는 New York의 Pleasantville이라고 아주 부자 동네에 살았어요. 기차로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빌 클린턴이 산다고 하더라고요. 백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였고, 집집마다 너무 크고 예뻐서 산책이나 조깅하면서 구경 많이 했었죠. 집 뒤에는 바로 산이 있어서 등산도 자주 했어요.


2주 간의 유급휴가는 어떻게 사용하셨나요? 미국에 머무르시는 동안 어디로 여행을 다니셨는지 궁금해요.
2주 동안 주어지는 유급휴가를 이용해 미국에 있던 고등학교 동창과 같이 여행 다녔어요. 일주일씩 끊어서 두 번에 나눠서 휴가를 썼고요. 요세미티 국립공원, 샌프란시스코, 산타모니카, 유니버셜 스튜디오, 씨월드, 라스베가스, 그랜드케년 등을 부지런히 다녔어요. 동부 쪽 플로리다 가서 랍스터도 먹고, 스노클링도 하고, 해변에서 하루 종일 휴식도 취하고…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주말에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다녔어요. 아까 얘기했듯이 미국 동부 13개주는 물론이고, 20곳이 넘는 도시를 여행했답니다. 오페어 생활을 통해 얻은 큰 수확 중 하나죠.


오페어로 일년을 지내시면서 항상 기쁘고 즐겁지만은 않았을 텐데 어떤 순간들이 힘들었는지, 그리고 그 때를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미국에서 오페어로 일년 반을 지내면서 아플 때 딱 두 번 울었어요. 그 외에 부모님이 그립거나, 한국이 그리워서 특별히 힘들었던 적은 없었어요. 제가 저희 호스트에게 항상 “나는 여기 아주 긴 휴가 온 기분이고, 너무 즐겁다” 라고 얘기했거든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호스트 가족 외에 미국에서 만난 기억에 남는 사람들(친구, 이웃 등)이 있으신가요?
저희 호스트파더가 벤처 기업을 운영하시는데(CNN뉴스에도 나오기도 했었어요!) 제가 오후에 학교 수업이 없는 날이면 회사 동료들이랑 점심 먹는 자리에 함께 했었어요. 그래서 특이하게 호스트파더의 회사 사람들이랑 같이 하는 자리가 여러 번 있었고, 친구가 되었어요. 저희 막내아이가 자주 놀러 가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집 부모님이랑도 친해져서 아직 가끔 연락하고 지내요. ESL 클래스 들으면서 남미 계통 사람들과도 많이 친하게 지냈던 것 같아요.


미국에 계시는 동안 어떤 수업을 들으셨나요?
미국에서 잘 찾아보면 동네 도서관, 교회 등에서 무료로 영어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은근히 많아요. 굳이 많은 돈을 안 들여도 질 좋은 수업을 들을 수 곳을 찾아다녔고, Manhattenvill college에서 ESL 수업을 들었어요. 그런데 가장 좋은 방법은 집에서 아이들한테 영어를 배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호스트맘은 제가 영어 일기 쓰면 틀린 문장 빨간펜으로 고쳐주셨거든요. 막내 Bailey가 제 영어 선생님이었어요. 발음이 틀리면 항상 지적하고, 고쳐줬었죠.


오페어로 일년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오신 직후의 생활에 대해 궁금합니다. 학업을 다시 시작하시거나 혹은 직업을 갖게 되셨을 텐데 오페어로 미국에서 지내셨던 시간들이 도움이 되셨나요?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되셨나요?
프로그램 6개월 연장해서 일년 반 동안 오페어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서 일단 학교로 돌아가 졸업을 했어요.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다가 영어 학원에서 초등학교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정말 즐겁게 일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오페어를 다녀와서 영어에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긴 상태였고, 이게 바로 나한테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영어를 더 잘 가르치기 위해 공부도 더 하고, 뉴질랜드에서 테솔 과정도 들었어요. 지금은 초등학교에서 영어회화 강사로 일하고 있어요. 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너무 기쁘고,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예비 오페어들에게 선배 오페어로서 전수해주고 싶은 노하우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들려주세요.
오페어로서 미국에서 일년을 보낸다는 것은 정말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이에요. 그런데 저는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찾아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과연 오페어란 프로그램이 나의 성격과 적성에 맞는지 본인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 떠나셨음 좋겠어요. 또 미국에 가셔서는 프로그램의 목적을 잊지 않았으면 하고요. 단순히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호스트 가족과 문화를 나누고, 미국을 체험하러 가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호스트 가족과 함께 보내는 데에 신경을 많이 쓰셨으면 해요. 주말오프까지도 함께 할 수 있다면 호스트와 함께 하시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호스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더 가족같이 지낼 수 있게 되시거든요.


“나에게 있어 오페어는 내 인생의 turning point와 같았다”
오페어 프로그램은 제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되었죠. 오페어로 미국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전 아직까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고 평범한 회사에나 다녔을 거에요. 아이들은 워낙 좋아했지만, 오페어를 가기 전에 영어를 정말 못했어요 그런데 오페어 다녀오고 나서 영어 잘 한다는 소리도 들었거든요. 그리고 전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참 좋았고, 제게 아주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있어요. 오페어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이고, 제 생활에 이렇게 만족하며 살고 있지 못했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