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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어 인터뷰

담당자 전혜윤
전화 02 333 4151(대표번호)
이메일 hyjeon@shoestring.kr

오페어 프로그램을 통해 그 전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는 그녀. 낯선 땅 미국에서 오페어로 살면서 다져진 도전정신과 모험심으로 다시 한 번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딜 준비를 하고 있는 그녀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가보자.


처음에 오페어 프로그램을 어떻게 알고 신청하셨어요?
오페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었고, 그 친구를 통해 오페어 프로그램에 대해 좋은 느낌을 받았어요.


프로그램의 어떤 점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떠나기로 결심하게 되셨나요?
당시 어학연수나 다른 프로그램으로 해외에 나가기엔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이 많이필요했는데, 오페어 프로그램은 저렴한 비용 덕분에 제 스스로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무엇보다 미국 현지 가족과 함께 생활한다는 점에서 그들과 문화적으로 가까워 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페어를 선택하기로 결정했어요.


함께 지냈던 호스트 가족의 소개를 부탁 드려요.
저는 한국인 호스트맘(host mom)과 미국인 호스트파더(host father)가 있는 가정에서 지냈어요. 두 분 모두 대학 교수님이셨고, 6살짜리 여자 아이 한 명을 돌봤죠. 아이는 한국말을 거의 못했고, 저희 호스트는 저를 통해 아이에게 한국말과 문화를 자연스럽게 알리고 싶어하셨어요. 집에서는 외동딸에 천방지축 공주님인데, 막상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지내는 걸 보니 양보도 잘하고 어찌나 의젓하던지… 아이를 유치원에서 픽업해서 오는 길에 얘기를 들어보면 기가 쎈 아이들이 우리 아이를 괴롭혔던 적도 있더라고요. 아이가 순진해서 다른 아이들한테 당하기만 하고, 마음 상해하면 저도 덩달아 어찌나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는지 몰라요.


한국인 호스트맘과 지내기는 어떠셨어요? 특별히 단점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었나요?
가족 중 호스트맘하고만 한국어로 대화했어요. 유일하게 한국말을 하셨거든요. 저도 처음에 가장 걱정스러웠던 부분이 한국인 호스트맘이기 때문에 마이너스가 되면 어쩌나 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제가 처음에 영어가 서툴러서 적응하기 힘들 때 가장 많이 도와주셨고,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이 있거나 아이에게 꼭 필요한 부분, 저한테 필요한 것들 등 중요한 사항들에 대해 얘기할 때 제 의사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어서 너무 편했어요. 아이의 학교 생활, 교우 관계 등에 대해서도 호스트 맘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호스트맘도 절 더 신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반대로 사고 방식이나 생활 방식은 미국식이셨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 이외의 자유시간에 대해서는 일체 간섭하지 않으셨고, 제 사생활도 철저히 보장해주셨어요. 주말오프 동안 저희 아이에겐 제 방 출입금지령이 내려졌을 정도니까요.


그렇다면 아이와는 영어로 의사소통 하셨겠군요. 아이에게 혹시 한국어도 가르쳐주셨나요?
아이는 한국말을 거의 못했고, 저희 호스트는 저를 통해 한국말을 배우길 원하셨어요. 칭찬은 한국말로 하고 꾸중은 영어로 하는 방법을 썼는데, 꾸중할 땐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영어로, 칭찬은 들을수록 기분 좋은 거니까 우리말로 했죠. 한글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주로 좋은 얘기들을 한국어로 했어요. 일 년간 저와 생활하면서 한국어가 많이 늘긴 했지만, 저와는 90% 정도 영어로 의사소통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아이 입장에서 자기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영어로 말해야 했거든요. 또 당시 여섯 살배기 저희 아이가 단어를 한참 배울 때였는데 옆에서 저도 함께 배웠어요. 저는 아이에게 영어 단어를 가르치고, 저희 아이는 저에게 정확한 영어 발음을 가르쳐줬어요. 아이와 영어로 의사소통하고, 함께 공부한 덕분에 거꾸로 제 영어가 일취월장이었어요.


호스트 가족과 함께 했던 나들이, 여행, 크리스마스 등의 특별한 추억이 있으신가요?
제가 미국에 도착했던 첫 주에 가족들과 동물원에 갔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아이랑은 친해지기 전이라 서먹하고, 영어로 의사소통도 아직 힘들 때라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호스트맘이랑 호스트파더가 너무 잘 해주셔서 감사했었어요. 우리 아이 손을 살짝 잡았는데 어찌나 조그맣던지, 부서질것 같아서 꼭 쥘 수도 없었거든요. 물론 그 꼬맹이가 고작 1개월 후, 악마 공주님으로 변신하긴 했지만 말이죠! 아, 제가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운전이 조금 미숙해서 호스트파더가 운전을 직접 가르쳐줬는데, 그 때 호스트파더랑 많이 친해졌어죠. 운전면허증을 따고 나서 호스트파더한테 얼마나 고맙고, 또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는지 몰라요.


아이들과 어떤 활동(놀이)을 주로 하셨어요? 아이들을 돌보면서 있었던 재미있는 사건, 혹은 잊지 못할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해 주세요.
아이가 미술에 관심이 많고, 소질이 있어서 항상 그림을 그렸어요. 카드를 같이 만들어서 호스트에게도 선물하고, 종이를 접어서 책도 만들곤 했죠. 안 해본 미술 활동이 거의 없고요, 아이가 외동이다 보니 같이 놀이 할 형제, 자매가 없어 제가 곁에서 늘 놀이 친구 겸 선생님 역할을 했어요. 숨바꼭질, 병원놀이 하는 것도 좋아했고, 같이 도서관, 수영장에도 가고 근처 과학센터 같은 곳에도 다녔어요.


미국의 어느 지역에 계셨나요? 머무르셨던 동네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해주시겠어요?
저는 미국 동부 Missouri 에 있는 Saint Louis 라는 곳에서 지냈어요.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되어있는 도시에요. 세인트 루이스 카디날스라는 메이저리그 야구팀의 도시라서 시즌이 되면 온 도시 사람들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홈구장으로 가는 풍경이 참 재미있었죠. 저희 동네는 Central West End 라고 세인트 루이스의 서쪽 입구에 위치한 동네였는데 근사한 레스토랑과 카페, 서점 등이 많아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동네였어요. 언제든지 멋있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었죠.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단골 카페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2주 간의 유급휴가는 어떻게 사용하셨나요? 미국에 머무르시는 동안 어디로 여행을 다니셨는지 궁금해요.
일리노이주의 시카고에 갔었어요. 시카고의 존 행콕 센터의 꼭대기 층에 있는 펍에서 마티니를 시켜놓고 본 야경이 어찌나 멋있던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에요. 미시건 호수를 다니는 페리를 타고 시카고 시내 경관도 감상하고, 호스텔에 묵으면서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과 친구가 되어 밤새 놀기도 했었고요. 그 때가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아 반년 뒤에 한번 더 시카고를 갔었답니다.


오페어로 일년을 지내시면서 항상 기쁘고 즐겁지만은 않았을 텐데 어떤 순간들이 힘들었는지, 그리고 그 때를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마음은 늘 가족처럼 지내고 싶었는데, 지내다 보니 호스트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일’ 처럼 느껴지는 날들도 있었어요. 주말에 호스트 가족이 근사한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고 하면, 왠지 일이라고 느껴져 거절할 때가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호스트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았을걸 이라는 후회가 드네요. 하지만 저희 호스트 가족이 저를 진짜 가족처럼 대해줘서 참 감사했어요. 가족들이 항상 친절하게 대해줘서 힘든 시기는 금방 지나 보낸 편이에요.


호스트 가족 외에 미국에서 만난 기억에 남는 사람들(친구, 이웃 등)이 있으신가요?
저는 한국인이 없는 지역에서 살아서 같은 클러스터의 오페어들끼리 친하게 지냈어요. 클러스터 카운셀러였던 Anna도 너무나 열정적으로 우리를 이끌어 줬고, 밈이라는 태국 오페어와 베스트 프랜드가 되어 제일 친하게 지냈어요. 친언니처럼 절 돌봐줬고, 주말이면 밈의 호스트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 가족이 제게 베풀어 주었던 환대는 잊을 수 없어요.


미국에 계시는 동안 어떤 수업을 들으셨나요?
저는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ESL 클래스를 들었어요. 처음에는 너무 어려워서 힘들었지만, 금방 적응이 하게 되더라고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도 만날 수 있어서 신기하기도 했고요.


오페어로 일년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오신 직후의 생활에 대해 궁금합니다. 학업을 다시 시작하시거나 혹은 직업을 갖게 되셨을 텐데 오페어로 미국에서 지내셨던 시간들이 도움이 되셨나요?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되셨나요?
저는 4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오페어를 다녀왔기 때문에 한국에 들어오니 취업 시즌이더라고요. 졸업 전에 제 전공을 살려 사회복지사로 취업을 했습니다. 현재까지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고, 요즘 다시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하는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자 하는 모험심은 오페어 생활 이후에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예비 오페어들에게 선배 오페어로서 전수해주고 싶은 노하우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들려주세요.
오페어 생활이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늘 행복하지만은 않아요. 일을 하다 보면 가족들과 부딪힐 때도 있거든요. 특히 아이를 돌보는 일이다 보니 작은 실수도 크게 보일 때가 있고요. 하지만 미국 문화를 생생하게 겪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열린 마음으로 지내다 보면 생각할 수도 없었던 굉장한 일들이 일어나더라니까요. 오페어를 준비하시는 분들 모두 파이팅입니다!


“나에게 있어 오페어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 여행과 같았다”
오페어로 미국에서 살면서 그 전까지 내가 모르고 있던 나를 많이 알게 되었어요. 아이를 돌보면서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알게 되었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내가 얼마나 닫혀있던 사람 이었는지를 느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내 안에 숨어있던 놀라운 잠재력도 깨달았죠. 오페어를 마치고 일년 뒤에 한국으로 돌아온 저는 오페어를 시작하기 전의 제 자신과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원래 낙천적인 성격이기도 했지만 뭐든지 도전하면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생겼죠. 내년에는 호주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제 인생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오페어로 지낸 시간들이 없었다면 제 인생의 목표도 달라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