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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어 인터뷰

담당자 전혜윤
전화 02 333 4151(대표번호)
이메일 hyjeon@shoestring.kr

성공적으로 오페어 프로그램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신발끈 여행사의 오페어 프로그램 담당자로서 수많은 오페어들을 미국으로 보낸 그녀. 예비 오페어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그녀의 알토란 같은 조언에 두 귀 쫑긋 세워보시라.


처음에 오페어 프로그램을 어떻게 알고 신청하셨어요?
대학교 4학년 때 해외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에 학교 선배의 친구가 오페어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때부터 오페어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보고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오페어 프로그램의 어떤 점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떠나기로 결심하게 되셨나요?
1년간 떠나는 어학연수에 비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학교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고 주/식이 해결된다는 점, 내 스스로 현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고 여행도 할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현지 가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많이 늘 것 같은 점이 마음에 들어 지원하게 됐어요.


함께 지냈던 호스트 가족에 대한 소개를 부탁 드려요.
저희 호스트 가족은 모두 다섯 명이었어요. 똑똑하고 시원시원한 호스트맘(host mom) Jean, 집안일을 전담하는 호스트파더(host father) Ken,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하는 초등학교 1학년 7살짜리 귀여운 소년 Eric, 역시 나보다 영어를 잘 했던, 사랑스럽지만 여우 같은, 끔찍하기도, 깜찍하기도 했던 4세 소녀 Ilka, 내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았던 너무 사랑스런 7개월 여자아기 Alice까지.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지낼 때면 하루가 정신 없이 금방 흘러갔어요.


아이들과 어떤 활동(놀이)을 주로 하셨어요? 아이들을 돌보면서 있었던 재미있는 사건, 혹은 잊지 못할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해 주세요.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 주고, 아이들과 같이 넓은 저희 집 앞마당에서 많이 뛰어다녔어요, 저는 무지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저희 호스트는 굉장히 좋아했죠. 또 제 생일에 케이크 앞에 놓고, 아이들이 생일 축하 노래 불러주던 것도 생각나고, 여름에는 같이 물놀이 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아, 세 아이들 중에 막내 Alice랑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일 많았는데, 다른 아이들이 저한테 와서 안기면 Alice가 질투를 해서 막 울었어요. 그 당시엔 참 소소한 일들이었는데 지금 와선 추억이 됐네요.


호스트 가족과 함께 했던 나들이, 여행, 크리스마스 등의 특별한 추억이 있으신가요?
호스트 가족과 함께 여름 휴가로 갔던 작은 섬, Sand Island가 기억에 남아요. 미국인들의 휴가 문화를 곁에서 지켜보며 많은 걸 느끼고 배웠던 여행이었거든요. 섬 자체도 인상적이었고, 어른,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YMCA 율동을 함께 하는 그들의 건전한(!) 오락시간도 신선한 충격이었죠. 또 미국인들의 파티 문화도 인상적이었고요. 영화 속에서만 보던 야외 파티, 가족들과 함께하는 할로윈 파티, 크리스마스 파티, Thanksgiving Day, Easter 등의 새롭고 즐거운 경험들은 오페어 생활에 큰 힘이 되어주었어요.


미국의 어느 지역에 계셨나요? 머무르셨던 동네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해주시겠어요?
Massachusetts 주의 남쪽에 위치한 Sharon이라는 곳이었어요. Boston과 가깝고, 영국의 마을 풍경 느낌과 비슷해요. 평화롭고, 아담하고, 정겨운, 전형적인 미국인 마을이었어요.


2주 간의 유급휴가는 어떻게 사용하셨나요? 미국에 머무르시는 동안 어디로 여행을 다니셨는지 궁금해요.
썬트랙이란 프로그램을 통해서 서부 여행을 했어요, LA에서 시작해서 라스베가스, Sand dune이라는 사막 등등을 거쳐 샌프란시스코까지 갔었어요. 친구가 있는 시카고에도 다녀오고, 주말 등을 이용해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작은 도시나 관광지 등으로 짬짬이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미국에 계시는 동안 어떤 수업을 들으셨나요?
첫 수업은 집에서 가까운 Community College에서 ESL을 들었어요. 미국에 도착한 이후에 호스트 가족과 함께 살면서 영어 실력이 부쩍 향상되는 것 같아 신났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 살짝 지루해지기 시작했었거든요. 그 즈음 시작된 학교 생활은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죠. 이벤트 플래너에 관심이 있어 같은 대학에서 관련된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어요. 수업 내용을 제가 모두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한국처럼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수업을 진행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수업을 이끌어 가는 진행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학생들이 주어진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발표하면서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 새롭고, 때때로 부담이 되기도 했었죠. 그리고 동네 도서관에서 하는 일대일 영어 튜터링 프로그램을 신청했었어요. 도서관에 프로그램 참가 신청을 하면 영어를 가르쳐 줄 자원봉사 선생님을 연결해줘서 그 분과 따로 정기적으로 만나서 영어 공부를 했죠. 미국 내 모든 도서관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오페어들이 잘 이용한다면 영어 공부 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오페어로 일년을 지내시면서 항상 기쁘고 즐겁지만은 않았을 텐데 어떤 순간들이 힘들었는지, 그리고 그 때를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똑같은 주급을 받으며 나보다 훨씬 편하고 좋은 상황에 있는 오페어 친구들이 불평불만을 늘어 놓을 땐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보다 적은 수의 아이를 돌보거나 일하는 시간이 적은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솔직히 짜증이 날 때도 있었거든요. 거기다 아이들까지 말을 안 듣고 저를 괴롭히면 정말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우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그 때마다 나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면서 그 상황들을 이겨나갔어요. 분명 나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에서 어렵게 오페어 생활을 하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고, 지금 내가 받고 있는 대우가 오페어 규정에 어긋나지 않으니 내가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면서 말이죠. 여기서 내가 포기한다면 나 자신에게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계속 다독였어요.


오페어 프로그램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신 직후의 생활에 대해 궁금합니다. 학업을 다시 시작하시거나 혹은 직업을 갖게 되셨을 텐데 오페어로 미국에서 지내셨던 시간들이 도움이 되셨나요?
운이 좋았던 거라 해야 할까요? 전 오페어 경험을 살려 오페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신발끈 여행사에서 오페어 담당자로 근무했어요. 일년 간 오페어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 높이 평가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제멋대로인 아이들을 다루면서 생긴 인내심과 호스트와의 갈등 속에서 갖게 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한국으로 돌아와 사회 생활을 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옛말이 있듯이 즐거움과 고생스러움이 함께 했던 오페어 생활은 제 자신을 한층 더 성숙하고 당찬 여성으로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신발끈 여행사에서 오페어 담당자로도 계시면서 많은 오페어들을 미국으로 보내셨는데 오페어를 준비하는 후배들을 위한 팁이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오페어 프로그램은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도 할 수 있고 영어 실력도 키울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안전한 프로그램이에요.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어학 연수가 아니라 참가자가 현지 가정에 머물면서 베이비 시터로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의무라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본인의 의무를 다 했을 때 따라오는 혜택이 영어 실력 향상, 여행, 내적 성숙 등이지 거꾸로 이러한 혜택들을 목적으로 삼아 오페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면 프로그램의 취지와도 맞지 않을뿐더러 본인도 그 생활을 버티어 내기가 굉장히 어렵게 되기 때문이죠. 가끔 오페어로서의 본인의 의무는 뒤로한 채 호스트 가족 혹은 오페어 프로그램으로부터의 혜택만을 요구하는 분들이 계신데 프로그램의 취지를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오페어 프로그램 지원자가 좋은 호스트 가족과 빠른 시간 내에 매치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아이들을 잘 다룰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영어실력과 운전실력이겠죠. 마지막으로 지원자가 호스트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 조건이 까다롭지 않다면 빠른 시간 내에 매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 기억에 남는 지원자가 있으신가요?
네, 많은 분들이 기억나지만 지방에서 유치원 선생님으로 일하다가 오페어로 지원하셨던 분이 특별히 기억에 남아요. 만 27세가 되기 얼마 전에 매치할 시간도 충분하게 갖지 않고 오페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는 열정만으로 지원하신 분이셨거든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분명한데 영어를 너무 못하셔서 호스트 가족과 매치가 안 될 수도 있다는 고민을 안고 진행을 시작했던 분이었습니다. 영어 인터뷰를 한 후에 매치가 되어서 미국에 간다고 해도 영어를 너무 못 하셔서 미국에서 잘 버티실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될 정도였거든요. 다행히 가까스로 지원자 분의 스물 일곱 번째 생일 직전 매치가 되어 출국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행하면서도 계속 “영어공부 열심히 하세요”, “공부 많이 하셔야 해요”라는 식으로 그 분께는 어쩌면 상처가 될지 모를 말들을 수도 없이 반복했는데, 출국하셔서 잘 도착했다는 이메일을 보내셨더라고요. 같이 출국한 동생들도 자기 영어실력을 보고 많이 걱정하더라는 웃지 못 할 소식을 전하며 오페어 생활을 시작하셨던 그 분이 2년이 지난 후에 신발끈으로 찾아와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이라며 유학비자 수속을 도와 달라고 하시더군요. 2년 전 푸근한 시골 유치원 선생님의 모습은 사라지고 세련된 모습의 자신감 넘치는 그 분의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또 다른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설레임을 가지고 유학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고요. ‘오페어 프로그램 담당자로서 저 분의 앞길을 막을 수도 있었는데 본인의 의지가 확고하여 도와 드렸더니 저렇게 멋있게 발전하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그 분 인생에 무엇인가 대단한 일을 해 드린 것처럼 뿌듯하고 보람된 순간이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아마 아직도 미국에 계실 그 분, 열심히 공부하시고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중학교 행정실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며 원어민 관리 및 행정업무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또한 제 미래를 위한 학업을 다시 시작하여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 오페어는 충전과 같았다”
미국에서 오페어로 있는 지내는 동안에는 하루하루 아이들을 잘 돌보고,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하며 여유롭게 미국 생활을 즐길 수 있었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1년 후, 5년 후, 10년 후를 계획하고, 그 목표를 향하여 쫓기듯 정신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 당장 무엇을 하고 있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여유를 가지기도 힘들고요. 지금 돌이켜 보면 오페어로 지내는 동안에는 눈 앞에 펼쳐진 현실에 충실하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지난 날들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는, 조금 더 여유롭고 자유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여행도 하고, 좋은 추억도 만들고, 에너지도 충전할 수 있었던 시간… 나에게 있어 오페어는 충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