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2004-05-20 14:33]
[스포츠서울]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행안내서로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의 여행 가이드북을 꼽을 수 있다. 인기 여행지는 물론이고 오지의 섬까지 세계 구석구석을 찾아 발굴해 최고의 볼거리, 맛집, 쇼핑 등 여행정보를 엄선한다. 어찌나 철저하고 상세한지 아프리카 일부 저개발 국가에서는 세관의 압수 대상 품목일 정도다. 그 이유는 여행객에게 바가지 안 쓰는 법만 잔뜩 가르쳐주고 있어 외화벌이에 방해가 되기 때문. 소말리아 내전에 참가한 미군이 현지 로드맵이 없어 지리를 파악하기 위해 들고 다녔던 책자이기도 하다.
론리 플래닛 책의 첫번째 구매자는 놀랍게도 미 CIA다. 정보로서의 가치를 인정하는 까닭이다. 론리 플래닛의 창시자인 토니 휠러(58)는 마이크로 소프트사 회장인 빌 게이츠가 호주를 방문했을 때 호주 총리 외에 유일하게 만나기를 요청했던 인물이다. 인상파 화가 고흐 그림의 온라인 저작권을 사들이고 있는 빌 게이츠가 전 세계의 방대한 이미지와 텍스트 콘텐츠를 지닌 훨러의 가치를 모를 리 없다. 론리 플래닛의 영향력을 뒤늦게 알게 된 한국관광공사는 한국판을 제작하러 온 저자를 위해 과장급 간부를 3주 동안 붙여 취재를 도왔다. 영문 한국 가이드북은 총알택시를 다룰 만큼 세세히 설명돼 있고, 민방위 훈련 대처 요령도 알려준다. 번데기를 먹는 것을 신기해하기도 한다.
호주에 본사를 둔 론리 플래닛은 700여종의 여행 관련 서적을 17개 국어로 출판한다. 여행에 관련된 서적만 출판하는 회사임에도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업 중 브랜드파워가 소니, 삼성 등에 이어 6위다. 20여개국의 지역전문가인 350명의 저자를 활용하는데 한국판 저자는 한국에 3년 정도 살아본 외국인이다. 해당지역을 맡은 저자들은 사전 교육을 철저하게 받는다. 필자들은 여행객들이 많이 몰리는 4~5월에 현지에 간다. 현장조사 때 호텔의 침대가 딱딱한지, 푹신한지까지 직접 체험한다. 여행 정보를 모아서 7~8월에 책을 쓰고, 하반기에는 제작에 들어가 새해에 책을 펴낸다. 2~3년을 주기로 정보들을 갱신해 보정판을 낸다. 여행서라는 본분에 맞게 이방인의 시각에서 호기심을 끌 내용들을 많이 다룬다.
1년의 절반 이상 집을 떠나 있는 지구촌 여행가인 휠러 자신도 100여개국을 여행하며 티베트, 인도, 일본편 등 30편의 여행서를 직접 저술했다.
한국도 두 차례 방문했는데 전국에 인터넷 카페가 널려 있는 것을 놀라워하면서도 “유적이나 박물관 대부분이 침략, 착취, 약탈 등 일본의 만행만을 강조하고 있어 유서 깊은 한국 역사의 다양성을 살리지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문화가 특수성에 너무 기대다보면 보편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충고였다. 론리 플래닛의 국내 수입사로, 휠러와 수차례 접촉한 신발끈여행사의 장영복 대표는 “론리 플래닛은 휴머니즘, 정, 남을 배려하는 정신,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다”면서 “앞으로 여행에서 만난 사람과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을 구상 중이다”라고 말했다.
서병기 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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