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루판

사막의 오아시스로 불리는 투루판은 실크로드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도시 중 하나다. 이스라엘의 사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낮은 곳으로 해수면보다 280m나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투루판은 북서쪽은 우루무치, 남서쪽은 카스, 남동쪽은 란저우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로 예로부터 실크로드의 거점 도시 중 하나로 발전해 왔다.

서역으로 가는 관문, 투루판

투루판은 사막 위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이다. 실크로드의 출발지인 시안을 출발해 투루판에 도착할 무렵이면, 풍경은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들 정도의 사막이 펼쳐진다.
풍경뿐만 아니라 사람과 문화도 모두 바뀐다. 이렇게 황량한 땅에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막상 투루판에 도착하면 나무가 우거지고, 물이 넘쳐 나는 것이 삭막한 사막 속을 헤매다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을 준다.
투루판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한족이 아닌 머리에 하얀 모자를 쓴 위구르인들이 대부분이라 묘한 분위기를 전해준다. 투루판은 지금은 한적한 시골 도시에 불과하지만 한때는 천산남로의 핵심 도시로 엄청난 번영을 누리던 곳이었다. 투루판이라는 지명은 15, 16세기에 이 분지에서 세력을 떨쳤던 고대 왕국인 투르판국과 그 도성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투루판은 위구르어로 '파인 땅'이라는 의미인데, 실제로 투루판의 지형을 살펴보면 천산산맥의 남쪽에 분지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투루판은 이스라엘 사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지표가 낮은 지역이라 여름에는 기온이 50도에 달할 정도로 덥고, 겨울에는 엄청난 추위가 몰아닥치는 도시이다.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에 투루판은 중국에서 가장 맛있는 포도가 수확되는 도시이자 포도주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실제로 여름에 방문하면 가로수가 포도나무일 정도로 포도가 많이 자라는 도시이다.

  ▶ 황량한 들판에 폐허의 유적으로 남아 있는 가오창고성

Photo by Wonju Youth pavilion  

투루판을 대표하는 유적인 자오허성과 가오창성

투루판은 실크로드에서 볼거리가 가장 많은 도시 중 한 곳이지만 대부분의 유적들이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서 돌아보는 것이 조금 불편하다. 투루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적은 자오허 고성(교하고성)과 가오창성(고창성)이다. 시내에서 서쪽으로 10km 정도 떨어져 있는 교하 지역은 기원전 108~AD450년 까지 차사국의 수도였다. 자오허고성은 지연적으로 형성된 강의 중간 지점의 가파른 절벽에 지어진 성으로 원래 궁전과 관청, 주거지 등이 있었는데 모두 부서지고 지금은 유적 터만 남아 있다. 당나라 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전성기 때 6천 5백 명의 인구가 살았다고 하는데, 당시 장안의 인구가 20만 명이 조금 넘는 정도였으니 변방의 도시치고는 꽤 큰 편이었다. 자오허고성은 14세기 몽골군의 침입으로 대부분 파괴됐지만, 당나라 시대 때 건축된 몇몇 건물이 10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자오허고성에서 45km 정도 떨어진 들판에 놓여 있는 가오창고성은 고대 가오창(고창)국의 수도로, 현장법사가 천축으로 불경을 구하러 갈 때 잠시 머물며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했던 곳이다. 9세기 중엽, 위구르족이 고성으로 이주한 뒤, 외성과 내성을 쌓아 왕성의 규모를 확대했지만 역시 14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왕국은 멸망했다. 아쉽게도 가오창고성의 유적들은 대부분 파괴되었거나 풍화되어 겨우 그 흔적만이 남아 있다.

  ▶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자오허고성. 그 옛날 차사국의 수도였다.

Photo by Wonju Youth pavilion  

서유기의 무대인 화염산과 베제크리크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투루판은 소설 ‘서유기’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삼장법사와 손오공 일행은 투루판에 이르러 사막의 무더위에 고생을 하면서도 불경을 찾아 떠난 천축으로의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서유기’의 무대가 되었던 곳은 베제크리크 천불동 계곡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화염산이다. 햇빛을 받으면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서유기’에 등장하는 화염산이 바로 이곳을 말하는 것이다. 이 산은 지표의 온도가 80도에 달해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다.
화염산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베제크리크 천불동 계곡이 나온다. ‘베제크리크’는 위구르어로 ‘장식된 집’이란 뜻으로 계곡 곳곳에 위치한 동굴 내에 화려한 벽화와 불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원래 베제크리크 동굴은 둔황의 막고굴에 버금 갈 정도로 큰 규모였으나 14세기 이슬람 제국의 침략과 근대들어 외국의 탐험가들이 벽화와 불상을 무분별하게 떼어 나가 훼손상태가 심하다.

  ▶ 포도농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

Photo by Wonju Youth pavilion  

글 김선겸
사진 원주청년관

위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