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주라호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허무는 카주라호의 조각

모든 동물들은 성(性)을 통해 태어나고, 성을 통해 자신을 복제해 갑니다. 그것은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성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끈 행위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금을 막론하고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넘나들며 많은 사람들이 성과 관련된 표현들을 해 왔습니다. 그 중 카주라호만큼 적나라하게 성을 묘사해 놓은 곳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카주라호 사원의 벽면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아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요염하고 관능적인 성행위 장면을 묘사한 부조들로 가득합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모두 부숴 버리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로 노골적인 묘사들입니다. 하지만 이 조각들이 결코 야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수준 높은 예술작품으로 보는 사람들이 더욱 많을 것입니다. 흔히 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외설인 것도, 누군가는 예술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과 외설의 판단은 그만큼 주관적입니다. 카주라호 사원의 조각을 보고 느끼는 감정 또한 보는 개개인의 몫이겠지요.

에로틱한 조각을 새겨 놓은 이유

그렇다면 이렇게 에로틱한 조각들은 누가? 왜 만들었을까요? 카주라호의 사원들은 10~11세기에 찬델라 왕조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찬델라 왕조는 인도 중부지방에서 9~14세기 초까지 번영했던 왕조로 당시 카주라호는 찬델라 왕조의 수도였습니다. 찬델라 왕조는 전성기 때 약 80여개에 달하는 힌두교와 자이나교 사원을 건립하였는데, 지금은 다 파괴되고 22여개의 사원만이 남아 있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조각이 새겨져 있는 카주라호

Photo by Sunkyeom Kim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원의 벽면에는 모두 현란할 정도로 많은 조각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이 관능적이고 에로틱한 미투나(남녀교합) 상입니다. 사람들은 사원 외벽에 조각된 미투나상을 보면서 키득키득 웃거나 지나치게 외설적이라며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관능적인 조각을 새긴 이유를 알고 나면 결코 에로틱하게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도대체 찬델라 왕조는 무슨 이유로 이런 조각들을 새겼을까요? 거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설이 남녀 결합의 극치를 통해 신과의 성스러운 합일을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성적 결합이 아닌 성적인 에너지를 이용해 절정의 상태에서 자아의식과 우주의식이 하나가 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탄트리즘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는 것이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인도인들, 아니 힌두교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나 할까요. 하여튼 인도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것이 많은 나라입니다.

  ▶ 관능적인 여인들의 조각으로 가득 찬 카주라호의 사원

  ▶ 에로틱한 조각들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서부사원군

관능적인 조각들로 가득 찬 서쪽 사원군

카주라호의 사원은 시내를 중심으로 서쪽, 동쪽, 남쪽의 세 그룹으로 흩어져 있는데, 사원의 핵심은 힌두 사원들이 몰려 있는 서쪽 사원군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22개의 사원들 중 절반 이상이 이곳에 있는데다 보존상태 또한 가장 훌륭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서쪽 사원을 가장 먼저 찾아야 하는 이유는 카주라호를 찾는 가장 중요한 목적인 남녀교합상을 가장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쪽 사원은 시내에서도 가장 가까워서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여느 힌두사원과 마찬가지로 평범해 보이지만 사원 앞으로 다가가 벽면을 가득 채운 조각들을 보는 순간 누구든 깜짝 놀라게 됩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관능적이고, 노골적인 성행위 장면을 부조한 조각들로 사원 전체가 장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서쪽 사원군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원으로는 칸다리아 마하데브 사원(Kandariya Mahadev Mandir)과 락쉬마나 사원(Lakshmana Mandir)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두 사원에는 고대 인도의 성애(性愛)에 관한 경전인 카마수트라에 묘사된 행위를 훨씬 뛰어 넘을 정도로 노골적인 표현들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여러 명이 동시에 성행위를 하거나 동물과의 성행위 장면, 풍만한 젖가슴과 요염한 자태의 엉덩이, 매혹적인 눈매, 관능적인 몸짓 등으로 묘사된 이 사원의 에로틱한 조각을 보고 있노라면 모두 부숴버리고 싶었다는 간디의 심정이 이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카주라호의 조각엔 에로틱함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담겨 있습니다. 에로틱함뿐만 아니라 당시의 종교관과 사회생활을 담고 있는 조각의 내용과 예술적 완성도, 그리고 조각이 담고 있는 본질적인 내용을 알고 나면 외설적으로 보이던 에로틱한 조각들이 찬란한 예술의 꽃처럼 보일 것입니다.

  ▶ 보존 상태가 가장 뛰어난 서부 사원군의 사원들

Photo by Sunkyeom Kim  

자이나교 사원이 남아 있는 동부 사원과 남부 사원군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시내에 있는 서쪽 사원군에 비해 동부 사원군과 남부 사원군은 시내에서 3~4km 떨어진데다 보존 상태도 별로 좋지 않습니다. 동부사원군은 힌두 사원들이 몰려 있는 서부 사원군과는 달리 대부분이 자이나교 사원들이 그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동부 사원에선 에로틱한 조각뿐만 아니라 벌거벗고 있는 조각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소유를 버림으로써 비로소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자이나교의 이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동부사원군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파르스바나트 사원(Parsvanath Mandir)입니다. 그 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조각의 섬세함과 예술성 또한 훌륭합니다. 특히 벽면에 새겨져 있는 브라흐마의 조각은 카주라호의 전체 사원 조각을 대표할 정도로 훌륭합니다. 반면에 남부 사원군은 서부와 동부 사원군에 비해 인지도도 떨어지고 별다른 매력도 없어서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현재 카주라호의 사원들은 그 예술성과 역사성을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을의 모습도 엄청나게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 기차도 연결되지 않던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던 것이 기차역이 생겼는가 하면 곳곳에 특급호텔이 건설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여행자들이 카주라호를 찾고 있다는 것이겠죠. 관광객이 많이 찾다보니 시간이 정지된 것 같던 조용한 마을도 시끌벅적하게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유유자적한 느낌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서 조금 아쉽지만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 남부 사원군은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데다 보존 상태도 좋지 않아 여행자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

Photo by Sunkyeom Kim  

글·사진 김선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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