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Rwanda) |
Warning(여행불가능) 르완다는 전쟁지역으로 여행자들은 위한 공간은 없다. 잔인한 싸움은 툿시(Tutsi)와 후투(Hutu) 두 사회그룹간의 정치적 힘을 쟁탈하기 위한 투쟁으로 1차 대전 전후의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벨기에가 간접적으로 르완다를 통치할 때 특권을 가진 소수족인 툿시를 통해 간접적인 통치를 하고 있었다. 툿시와 후투는 상대방에 대해 정기적으로 반항을 일으켰고, 1962년 독립과 함께 다수인 후투가 권력을 쟁취한다. 툿시 당파는 자신들의 특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게릴라를 조직해 후투를 공격했는데 이로 인해 후투의 보복이 이뤄져 수 천 명의 툿시가 학살당하고 수 만 명이 우간다와 부룬디로 도망갔다. 종속간의 문제는 증대되고 비정상적으로 이어졌고, 1990년 10월에는 5,000명의 잘 훈련된 우간다에 기지를 둔 망명인 툿시 군대가 르완다를 침략했다. 며칠이 안돼 유럽의 지원을 받은 후투군은 툿시 뿐 아니라 툿시와 합작한 후투에 대해서도 난폭한 공격을 했다. 똑같은 일이 1991년, 1992년, 1994년에 반복됐으며 뒤를 이어 반(反)훗시 정부의 불 같은 충돌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크기로 발생했다. 르완다는 점점 2차 대전처럼 최악의 박애주의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한 달에 세 번이 발생하는 충돌로 인해 백만의 르완다인이 사망했으며 군대에 의해 훈련된 민병대가 커다란 우위를 갖고 있으며 마체테, 수류탄, 소총으로 무장되어있다. 3백 만 명이나 되는 르완다의 난민은 인접국가에 난민촌을 형성하고 있다. 살해는 UN 안전보장위원회의 대학살에 대한 우려로 인해 군대를 배치하기 한 달 전까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국제기구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데, 주로 1994년 7월 정권을 잡은 툿시 정부가 산악 캠프를 장악하고 있는 후투 극단주의자를 차단하기 위한 북서부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한다. 1998년에만 수 만 명의 비무장 민간인이 살해됐고, 상황은 더욱 복잡해 르완다 군은 한때 동조자였던 콩고 민주 공화국 카비라 대통령을 몰아내려는 반군의 영향을 받고 있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