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

서역으로 가는 관문인 돈황은 먼 길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에겐 오아시스와 같은 도시였다. 반면에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 죽음의 길을 헤치고 서역에서 돌아 온 사람들에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안식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실크로드의 퇴보와 함께 잊혀졌던 돈황은 190년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해 수만 점의 고문서가 발견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린 도시

돈황은 동서교역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서역과 중국의 문화가 만나는 교차점이었다. 돈황이 중국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한 무제 때이다. 한 2,300년 전에 한반도에 한 사군을 설치했던 그는 이 지역에 하서 4군을 설치하고 돈황을 서역 경영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하지만 돈황이 번영을 누리기 시작한 때는 5호 16국 시대와 북위, 서위, 수, 당을 거치면서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부각되면서부터이다.
돈(敦)은 ‘크다’, 황(煌)은 ‘성하다’는 뜻이니, 돈황은 이미 그 이름에서부터 크게 번성할 도시란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에 걸맞게 돈항은 실크로드를 내왕하는 대상무역으로 큰 이익을 얻었고, 이 부를 바탕으로 오늘날 돈황의 상징과도 같은 석굴 사원들을 건립할 수 있었다. 당시 번영했던 돈황은 현재 도시의 위치에서 서남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사막에 잠들어 있고, 현재의 돈황은 18세기 초, 청나라 때 만들어 진 것이다.

동굴 벽화의 진수를 보여 주는, 막고굴

실크로드에는 불교의 동점(東漸) 과정에 만들어진 수많은 석굴 사원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석굴 사원은 불교가 한참 번성하던 시기에 인도의 아잔타 석굴에서 시작하여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의 신장, 간쑤 지역 등 실크로드의 요충지에 앞다투어 만들어 지기 시작했는데, 막고굴 또한 이 시기에 건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막고굴은 366년, 전진시대 낙준이란 수행승이 명사산에 이르렀을 때 홀연 금빛을 보고 굴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돈황 석굴

Photo by Sunkyeom Kim  

이후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1천여 개에 달하는 석굴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모래에 파묻힌 곳이 많아 현재 발굴된 굴은 492개뿐이다. 막고굴이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것은 석굴 자체가 아니라 석굴 내부에 그려진 섬세하고 화려한 벽화와 부조, 조각상 때문이다. 특히 중국 문화의 황금기였던 당나라 시대 때 조성된 석굴들은 예술적으로 아주 뛰어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석굴 벽화에는 동서교류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이것은 돈황이 국제교류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돈황의220, 335굴의 벽화 가운데, ‘유마경변상도’에는 조우관(鳥羽冠)을 쓰고 있는 우리 선조들의 모습도 그려져 있어서 당시 한반도와 서역의 교류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막고굴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기 때문에 카메라를 소지할 수 없고, 원칙적으로는 혼자서 돌아보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장경동

약 1천 3백 년간을 사막에서 잠자고 있던 막고굴이 세계에 알려진 것은 영국의 지리학자 스타인과 동양학자 펠리오 때문입니다. 1900년 막고굴의 주지로 있던 왕원록은 우연히 16굴 안에 봉해져 있던 17굴(장경동)에서 수많은 고문서를 발견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스타인은 왕원록에게 약 1만 건의 문서를 구입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달려온 펠리오는 다시 중요한 문서 5천 건을 발굴하는데, 여기에 그 유명한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왕오천축국전>이 프랑스에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왕오천축국전>이 어떻게 장경동에 보관되어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신라에서 태어난 혜초 스님은 719년 어린 나이로 당나라로 건너가 공부를 하다가 인도 순례 길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경동은16굴에 달린 작은 암굴인데, ‘왕오천축국전’과 유적들이 발굴되면서 막고굴에서 가장 유명한 석굴이 되었으며 당당하게 17굴로 불리고 있습니다.
유물이 발견되어 유명한 것일 뿐 굴 자체는 별다른 매력이 없습니다.

  ▶ 돈황 석굴 내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Photo by Sunkyeom Kim  

실크로드의 로망이 펼쳐지는 곳, 명사산

돈황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끝자락에 위치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도시이다. 돈황을 찾는 주 이유는 막고굴 때문이지만 명사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을 간직한 곳이다. 명사산은 돈황 시내에서 5km 떨어진 모래 산으로, 밟고 올라갈 때 모래가 울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명사산 가운데에는 초승달 모양의 오아시스인 월아천이 있다. 사막 한 가운데서 천년 동안 단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다는 이 연못은 자연의 신비를 여실히 보여준다. 명사산의 능선에서 바라보면 연못 옆에 도교 사원이 있는 월아천이 신기루처럼 펼쳐지는데, 파란 물빛이 천 년 동안 사막이 숨겨온 시퍼런 비수를 보는 것 같다. 월아천 입구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낙타 몰이꾼들이 많아 관광 시즌 중에는 언제나 복잡하다. 낙타를 타고 칼날 같은 능선을 바라보며, 모래 산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그 옛날 실크로드의 대상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글·사진 김선겸

위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