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타푸르

중세 네팔로 되돌아 가는 시간 여행

카트만두에서 버스를 타고 남동쪽으로 약 40분 정도 가면 네팔 최고의 고도(古都) 중 하나인 박타푸르가 나옵니다. 박타푸르는 카트만두, 파탄과 더불어 세 개의 말라 왕국을 형성했던 곳으로 15~18세기에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 카트만두 계곡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던 도시였습니다. 특히 18세기 초에는 왕궁과 사원, 탑, 수많은 집들이 들어서면서 카트만두를 능가할 정도의 번영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18세기 말 카트만두 일대를 통일한 나라얀 샤 왕에 의해 정복 당한 뒤 카트만두의 위성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200년이 넘는 긴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의 유적들은 낡고 달았지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습니다. 박타푸르 입구에는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아치형의 작은 문이 있습니다. 이 문은 현재에서 중세 네팔로 넘어가는 시간 이동의 통로입니다. 이 문 뒤쪽으로 펼쳐지는 예스러운 풍경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절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됩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공간 이동을 한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살아 숨쉬는 야외 건축 박물관, 더르바르 광장

입구를 지나면 바로 더르바르 광장이 펼쳐집니다. 박타푸르의 더르바르 광장은 카트만두나 파탄의 더르바르 광장에 비해 훨씬 깨끗하고, 건축물의 배치도 안정적입니다. 광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광장 북쪽 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왕궁입니다.

  ▶ 박타푸르 여행의 중심이 되는 곳인 왕궁 광장

  ▶ 박타푸르의 중앙광장인 두르바 스퀘어

15세기, 약사 말라(yaksha Malla) 왕 시절에 만들어진 이 왕궁은 한 때. 99개나 되는 안뜰이 있었으나 1934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많은 건물이 파괴되어 지금은 그 규모가 훨씬 줄어 들었습니다. 관광객들이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은 현재 국립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서쪽 별관과 동쪽 별관뿐이지만 전체적인 왕궁의 아름다움을 엿보기에는 충분합니다. 55개의 나무 창문이 있는 왕궁의 입구는 온통 황금색을 뛰고 있는데 선 도카(Sun Dhoka), 또는 골든 게이트(Golden Gate)라 불리는 이 문의 벽면에는 아름답고 세밀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박타푸르에서 가장 뛰어난 조형물 중 하나인 이 문의 윗부분에는 전설 속의 새 가루다와 4개의 머리와 10개의 팔을 갖고 있는 여신 탈레주 바와니(Taleju Bhawani)가 새겨져 있고, 좌우 양쪽에는 힌두교의 신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황금의 문을 지나 왕궁의 안뜰로 들어가면 16세기에 만들어진 탈레주 사원(Taleju temple)과 17세기에 만들어진 수조인 나가 포카리(Naga Pokhari)가 있으나 살아 있는 아쉽게도 탈레주 사원은 힌두교도가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사각형의 수조인 나가 포카리에는 똬리를 튼 코브라 모양의 나가 석상이 수조를 보호하려는 듯 에워싸고 있고, 물이 나오는 곳에는 악어 신 머리장식을 한 청동 조각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왕궁 앞 광장에는 사카라 양식의 석조 탑과 기도를 하고 있는 말라 왕의 동상이 있고, 그 주변엔 한 눈에 보기에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목조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서 건축 박물관을 연상케 합니다.

200여 년 전의 모습이 완벽히 남아 있는 레(Taumadhi Tole)

더르바르 광장에서 그림과 골동품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골목을 지나 동남쪽으로 1분 정도 걸어가면 타우마디 톨레로 이어집니다. 이곳은 더르바르 광장에 비해 그 규모는 작지만 박타푸르에서도 손꼽히는 건축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광장입니다. 타우마디 톨레에서 가장 눈 여겨 봐야 할 것으로는 30m 높이의 5층 탑으로 이루어진 냐타폴라 Nyatapola temple 사원입니다.. 벽돌로 5층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다시 5층의 목조탑을 쌓은 이 사원은 워낙 튼튼하게 지어서 카트만두 밸리 지역을 강타한 두 번의 지진에도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원 입구의 돌계단 양쪽에는 맨 아래에서부터 사람과 코끼리, 사자, 그리핀 등 서로 다른 대형 석조 건물이 세워져 있는데, 한 층 위에 있는 조각이 아래에 있는 조각보다 10배의 힘을 지녔다고 합니다.

계단을 따라 탑 위로 올라가면 .광장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광장을 사이에 두고 사원과 마주보고 있는 3층짜리 목조 건물이 보이는데, 이곳은 박타푸르에서 여행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카페입니다. 카페의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면 다우마디 톨레의 주변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 비해 비쌈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관광객으로 북적거립니다. 타우마디 톨레에서 동쪽으로 10분 정도 더 걸어가면 박타푸르 최초의 중앙 광장인 타추팔 톨레(Tachupal Tole)가 나옵니다. 광장 자체는 더르바르 광장이나 타우마디 톨레에 비해 작고 볼품 없지만 빔센 사원(Bhimsen temple)과 나라얀 사원(Narayan Temple) 등의 사원이 있습니다. 광장 앞의 작은 골목에는 네팔 최고의 나무 조각으로 손꼽히는 공작새 창문(Peacock window)가 있으니 빼놓지 마십시오.

  ▶ 네팔에서 가장 화려한 조각으로 쏜꼽히는 공작 나무 장식

  ▶ 섬세한 장식으로 입구라 장시 되어 있는 장식

서민들의 삶의 열정이 느껴지는 도자기 광장

박타푸르의 세 광장을 모두 돌아보았다면 도기 광장으로 발길을 옮겨보는 것도 좋습니다. 도자기 광장은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더르바르 광장이나 타우마디 톨레와는 달리 박타푸르 서민들의 일상을 지켜볼 수 있는 곳입니다. 카트만두 일대에서 쓰이는 그릇의 상당량이 박타푸르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이곳에는 자기를 만들어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박타푸르에서 만들어지는 도기는 투박하고 서민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라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갑니다. 모든 것이 기계화 되어가고 있는 요즘 일일이 손으로 흙을 만져 도기를 빚고 있는 그들을 보면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그들은 외부인이 와서 사진을 찍어도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고, 묵묵히 자신들의 일에만 열중입니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그릇 만드는 일로 가족을 먹여 살렸을 장인들의 손길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모르게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아련한 슬픔이 밀려 옵니다. 도자기 광장에서 작업을 하는 장인들과 여인, 그리고 그곳을 놀이터 삼아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쩌면 박타푸르를 빛내는 것은 더르바르 광장의 왕궁과 사원 같은 화려한 건축물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삶에 대한 진지한 열정을 갖고 서민들이 아닌가 생각을 품어봅니다. 비록 급속하게 변하는 시대의 흐름은 따라가지 못하지만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진한 채, 소박하고 꾸밈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시, 박타푸르. 그곳은 네팔의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곳입니다.

  ▶ 공동 목욕탕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아이들

Photo by Sunkyeon Kim  

글·사진 김선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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