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

모로코의 고도(古都) 페스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이색적인 도시다. 이슬람 전통과 문화가 오롯이 살아 있는 이 도시는 ‘모로코의 정신적 고향’이라 불릴 정도로 모로코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페스를 찾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페스의 그 복잡한 미로와 1,2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아직도 그 시대의 방식으로 염색을 하는 염색공장(타니에르)을 보기 위함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복잡한 골목과 조우하다.

페스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메디나 때문이다. 메디나는 원래 아랍어로 도시를 뜻하는 말로, ‘메카’와 더불어 이슬람교의 양대 성지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지방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원과 학교, 수크(시장) 등이 밀집되어 있는 이슬람의 구시가를 아우르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모로코에는 여러 도시에 메디나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페스의 메디나가 유명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복잡한 미로 때문이다. 과거 이슬람 세계에서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도시를 복잡하게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복잡한 미로는 적이 쳐들어 왔을 때 방어하기 수월한 것은 물론, 도피하기에도 용이했다.
페스의 미로도 이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페스의 구시가지는 1200년 전 이슬람 왕조시대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페스는 13세기 메리니드 왕조 시대에 가장 번성한 후, 오랫동안 모로코의 신앙과 학문, 예술의 중심지였다. 한때 ‘모로코의 지적인 왕도’로 까지 알려졌던 곳이라 지금도 페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미로 속에서 길을 잃어도 좋아….

페스의 미로는 이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한 번 들어가면 그 출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다. 또한 그 골목이 얼마나 좁은지 마주보는 집의 대문을 엇갈리게 배치해야 할 정도이다. 페스의 메디나는 차가 전혀 다닐 수 없기 때문에 지금도 골목을 걷다 보면 종종 당나귀가 짐을 실어 나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200년 전의 중세 시대로 되돌아 간듯한 느낌을 주는 페스의 미로는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곳을 여행할 때는 꼭 가이드와 함께 들어가는 것이 좋다.

  ▶ 페스의 차나 수레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곳들이 많아서
  아직까지도 나귀를 이용해서 물건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많다.

  ▶ 페스의 골목에서 만난 순박한 아이들

무려 9천 여 개가 넘는 미로는 여행자를 질리게 만든다. 금방 지나 갔던 길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이니, 길을 찾아 다니며 제대로 여행을 하기는 애당초 쉽지가 않다. 미로에 들어서면 처음 몇 분간은 길을 잃지 않을까 조심한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몇 골목만 꺾어지면 왔던 길을 다시 찾기란 쉽지가 않다. 하지만 길을 잃었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페스의 미로 속에서는 길을 잃고 마음껏 돌아다니는 것이 페스의 진면목을 느끼기 가장 좋은 방법이니 말이다. 이 복잡한 미로를 걷다 보면 순박한 이곳 사람들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미로에서 만나는 풍경은 하나 같이 흥미롭다. 온갖 과일과 채소, 과자, 옷감, 장신구, 가죽제품 등 다양한 물건을 파는 흥미로운 시장과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순박한 아이들, 가이드 필요하지 않냐며 귀찮게 쫓아 다니는 동네 청년들, 차도르를 걸치고 골목을 당당하게 걷는 여인, 건물에 새겨진 아름다운 장식과 문양 등 이 좁은 골목 안에서 참으로 다양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등위로 지탱할 수 없을 만큼의 짐을 진 당나귀를 몰고, 좁을 골목으로 들어오며 비키라고 소리치는 늙은 짐꾼이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시나브로 중세 이슬람의 도시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 절로 들 것이다.

  ▶ 페스 구시가지로 연결되는 문

Photo by Sunkyeom Kim  

천 년의 세월이 무색한 염색공장, 타니에르

페스의 메디나 안에는 학교와 수도원, 유치원, 박물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859년 문을 열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카라윈 대학도 이곳에 있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페스를 찾는 가장 큰 목적은 아직까지 천 년 전의 방식 그대로 염색을 하는 가죽 염색공장이다. 세계 각국의 다큐멘터리물에 소개되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 염색공장은 현지 말로 ‘테너리(TANNERY)’ 라 부르는데, 이곳이야 말로 여행자들이 페스를 찾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페스의 미로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참기 힘들 정도로 고약한 냄새가 난다. 이 냄새가 나는 곳으로 따라가면 테너리가 나온다. 한때 모로코의 수도로 북부 아프리카와 중동, 남부 유럽을 연결하는 무역의 중계 도시였던 페스는 오래 전부터 명품 가죽의 생산지로 유명했다. 가죽 생산 작업은 주로 '말렘'이라고 불리는 장인의 손에 의존하는데, 작업 환경은 꽤나 열악하다. 우물과 비슷한 콘크리트 구멍 속의 염료 물에 직접 손으로 가죽을 넣었다 뺐다 하며 염색을 하는데, 냄새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는 염색 재료로 쓰이는 비둘기 똥 때문인데,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잠시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냄새가 역하다. 현지 사람들은 이 비둘기 똥이 인체와 무해한 친환경 염료라고 말을 하지만 가죽을 만드는 작업 방식은 꽤나 열악하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도 천 년을 이어가며 염색 일을 천직으로 삼고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가난하지만 주어진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짊어진 무거운 삶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글·사진 김선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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