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Guatemala)

과테말라는 30년간의 정신 없는 내전을 끝내고 이제 이성을 찾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이 불안정한 시기에도 배낭 여행자들은 중앙 아메리카의 모든 것을 압축해 갖고 있는 과테말라에 끌려왔다. 가장 높고 활발하게 진행 중인 화산, 가장 인상적인 마야 유적, 가장 비참한 지진과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그 어느 나라보다 큰 규모의 억압의 역사가 과테말라의 모습이다. 과테말라는 중앙 아메리카 마야인 지역의 심장부이지만 과테말라 정부는 마야인들을 감시하고 고문해 왔다  그들은 관광객을 끌기 위한 팜플렛에는 마야인들의 사진을 걸어놓고 마야인들의 얼굴에는 총을 들이대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테말라의 토착민 문화는 띠칼(Tikal)의 고대 유적과 치치카스떼낭고(Chichicastenango) 의 마야/카톨릭 의식, 그리고 마야인들이 입는 화려한 색채의 일상 의복 등에 건강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과테말라지도(9K)

통계 자료

국명 : 과테말라 공화국
면적 : 109,000 sq km (42,500 sq mi)
인구 : 1,100만 명 (인구 성장률 2.5%)
수도 : 과테말라 시티 (인구 2백만 명)
인종 : 스페인계 후손 56%, 마야계 후손 44%
언어 : 스페인어, 가리푸나(Garífuna)어, 21가지 마야어
종교 : 로마 카톨릭, 기독교, 마야-카톨릭 등이 섞임
정체 : 민주주의
대통령:알바로 엔리께 아르수 이리고옌(Álvaro Enrique Arzú Irigoyen)

지리 및 기후

과테말라는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나라로 멕시코와 북쪽, 북서쪽에 국경을 접하고 있고 북동쪽으로는 벨리세, 그리고 동쪽으로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와 접해있다. 과테말라의 다양한 지형은 산이 많고 숲으로 덮여있는 화산과 정글이 어지럽게 섞여 있다. 서쪽 고원에는 30곳이 넘는 화산이 있는데 높이 3,800m(12,464ft)까지 이르며 밤에는 붉게 빛을 발한다. 이 지역에는 지진 활동도 잦다. 널리 개간된 태평양쪽 해안선은 대부분 검은 모래 해변이 광대하게 펼쳐져 이으며 작은 카리브해 해안선을 따라서도 해변은 드물지만 풍부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넓은 정글저지대인 엘뻬텐(El Petén)은 바나나 농장과 공룡 뼈가 많이 발견되는 땅이 섞여있는 내륙을 차지하고 있다.

과테말라를 상징하는 새는 예쁜 께찰(quetzal)로 현재는 벌채와 밀렵에 의해 거의 멸종상태이다. 재규어, 오셀롯(ocelot), 푸마, 하구아룬디(jaguarundi, 들고양이의 일종), 마게이(margay,역시 들고양이의 일종)와 이들의 먹이가 되는 사슴, 페카리(peccary, 멧돼지의 일종),맥(tapir) 등도 살고 있다고 하지만 거의 발견하기 힘들다.

태평양 해안은 열대성기후로 찌는듯이 덥고 때로는 기온이 38°C (100°F)까지 올라간다. 계속될 것만 같은 축축한 습도도 건조기가 되면 다수 누그러진다. 고원지대는 밤에 아주 추우며 우기가 지속되는 동안 축축하고 싸늘하지만 건기(10월에서 5월)에는 따뜻하고 기분좋은 날씨가 유지된다. 엘뻬뗀의 기후는 덥고 다습한 기후에서 역시 덥고 건조한 기후로만 변한다.

역사

BC 2000년 전에 과테말라의 태평양 연안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어업과 농업에 종사한 사람들이 위대한 마야 문명의 선조들로 이들은 이후 몇세기 동안 중앙 아메리카를 지배하며 언덕의 꼭대기에 수수께끼의 유적을 남겨 놓은 마야 문명을 건설하였다. AD 250년경까지 초기 고전기에는 과테말라의 고원지대에 훌륭한 신전 도시들이 건설되기 시작했지만 후기 고전기(AD 600에서 900년)에 권력의 중심이 엘뻬뗀의 저지대로 옮겨갔다. 수수께끼 같은 마야 문명의 멸망에 뒤이어 현재의플로레스(Flores) 근처를 중심으로 잇싸인들(Itzaes)이 엘뻬뗀에 정착하였다.뻬드로 데 알바라도(Pedro de Alvarado)가 1523년 스페인 왕을 위해 과테말라를 정복하러 이곳에 왔을 때, 이 지역에는 마야 문명의 쇠퇴한 유적과 서로 싸움 중이던 부족들만 남아 있었다. 남아 있던 고원의 왕국들인 키체(Quiché)와 칵치꾸엘(Cakchiquel) 마야는 곧 알바르도의 군대에 의해 멸망되었고, 그들의 땅은 넓은 토지로 쪼개어져 빼앗겼으며 새로운 토지 소유주의 가혹한 착취에 시달리게 되었다. 뒤이어 들어온 도미니코 수도회,프란시스코 수도회,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수도사들도 이 가혹한 착취를 막지 못했으며 이들의 기독교 제국주의는 귀중한 마야 문명의 유적을 수없이 파괴하였다.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은 스페인계인 크레올인들에게 새로운 번영을 안겨주었지만 마야 후손들에게는 더욱 심각한 상황만을 남겨놓았다. 스페인왕의 몇 안 되는 자유로운 보호정책마저 버려지게 된 뒤, 거대한 마야인들의 토지가 강제로 빼앗겨져 담배나 사탕수수 농장으로 바뀌어졌으며 마야인들은 이 농장에서 더욱 노예처럼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독립이후 과테말라의 정치는 계속 좌익과 우익 세력의 경쟁으로 이어져 왔지만 그 어느 쪽도 마야인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것을 우선적인 정책 과제로 삼지 않았다.

분노한 바나나

과테말라의 정치사를 빛낸 지도자들은 소수의 예외적인 지도자들뿐이었다. 번갈아 가며 독재자들과 경제 위주의 자유주의자들이 득세하는 가운데 잠시동안 밝은 시기를 가져온 정치가로 후안 호세 아레발로가 있다. 그는 과테말라의 사회보장제도나 의료 제도를 확립하고 마야인들을 보살필 수 있는 정부 기구를 설치했다. 1945년부터 1951년 사이의 집권기간동안 아레발로의 자유 정권은보수적인 군부가 시도한 25번의 쿠데타를 견디어냈다. 아레발로를 뒤이은 하코보 아르벤스 구스만 대령은 자유로운 정책을 실시하며, 커다란 농지를 잘게 쪼개어 좀더 생산성 있는 개인 소유의 작은 농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농업 개혁법을 제도화하였다. 외국인 회사에 의해 지배되고 있던 토지를 전유하려는 시도는 과테말라의 공산당에 의해 지지를 받았지만 곧 미국 CIA의 개입을 초래하게 되었다. 미국의 지원하에 과테말라는 1954년 군부 쿠데타를 성공시켰으며 아르벤스 구스만은 쿠바로 망명하였고 토지개혁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이후 군부 출신 대통령들이 연이어 당선되었으며 저항과 탄압이 동시에 격화되면서 내전이 발발하였다. 1960년대와 70년대의 산업화 붐은 부유층만을 살찌우는 결과가 되었고 시골에서 땅을 잃은 사람들이 도시로 올라와 실업자가 되면서 도시들은 점점 비참한 지경에 빠졌다. 반정부 요소(즉 땅없는 가난한 농부들 대부분)에 대한 군부의 난폭한 탄압이 이어지자 결국 미국은 군부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였고 1985년 선거에서 문민 기독교 민주당의 마르코 비니씨오 세레소 아레발로(Marco Vinicio Cerezo Arévalo)가 당선되었다.

아레발로의 5년 비연임 정부에 뒤이어 보수적인 연대 행동당 후보인 호르헤 세라노 엘리아스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는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내전을 종식시키려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군부의 지지에 점점 의지함에 따라 인기를 하락하였다. 1993년 5월 24일, 대중들의 시위가 계속 이어지자세라노는 스스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대중적 지지를 상실한 세라노가 과테말라로부터 강제 출국당하게 된 뒤 군부에 대해 기탄없이 비판을 가해오던 라미로 데 레온 카피로(Ramiro de León Carpio)가 의회에 의해 대통령을 선출되었다. 카피로의 법과 질서를 내세운 정치를 계속해 이어받아 최근 새로운 대통령직을 계승한 알바로 아르수(Alvaro Arz&uacute)는 새로운 자유주의적 전문관료를 통해 반목과 범죄에 시달려 왔던 과테말라를 새로 일으키려하고 있다. 1996년 12월, 정부는 좌익 게릴라들과 연이어 평화협정을 체결하였고 군부도 국내 치안 관련 문제에 대해 역할을 축소하는데 합의하였다. 그러나 평화를 지속하기 위해 가장 커다란 관건은 과테말라 사회가 안고 있는 기본적인 사회 경제적 권력 구조의 불평등을 얼마나 해소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경제

GDP: US$9.6 billion
1인당 GDP: US$980
인플레이션: 9%
주요산업: 커피, 설탕, 바나나, 담배 재배
주요 교역국: 미국,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온두라스, 멕시코

문화

과테말라에 있는 많은 마야 유적과 식민지 시대 건축물은 가장 인상적인 건축학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흥미를 끄는 문화적인 측면 중 하나는 과테말라 마야인들이 손으로 직접 만든 전통적인 의복들로 무수한 이국적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화려하게 수놓아진 여인들의 블라우스, 케이프, 스커트 등의 디자인은 옛날 식민지 시대 이전부터 내려온 것이다. 옷이나 디자인에 있는 어떤 세부적인 부분들은 입고 있는 사람의 출신을 나타내며 또한 종교적인 의미나 주술적인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음악과 전통춤도 많은 마야의 종교 축제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나타낸다. 스페인어가 과테말라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언어이며 로마 카톨릭이 주요 종교이다. 복음교회나 기독교 강림교파 등도 많은 신도를 가지고 있지만 마야인들은 그들의 전통적인 종교적 측면을 보존하고 있으며 때때로 양자가 혼합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또르띠야나 따코 같은 일반적인 멕시코 요리도 발견할 수 있지만 과테말라 요리는 멕시코의 요리와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대부분 접하게 되는 요리는 질기게 구운, 또는 튀긴 고기, 고기 그리고 또 고기뿐이다. 콩과 쌀은 종종 가장 싸고 괜찮은 대안이 되며 과테말라에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중국식당

들이 있다. 커피는 어디서든 마실 수 있다  때로는 아주 뛰어난 맛도 있지만 어쩔 때는 무척 연하며 설탕만 잔뜩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다. 라이트비어나 다크비어 등 맥주는 상당히 퍼져 있으며 럼과 께찰떼카는 과테말라에서 인기 있는 도수 높은 술이다.

축제 및 행사

세마나 산타(성 주간, 이스터 전주)는 과테말라의 가장 큰 축제 기간으로 전국적으로 기도 행렬과 축하 행사가 펼쳐지는데 안띠구아의 축제가 가장 볼 만하다고 말해진다. 코반(Cobán)에서 열리는 라빈 아하우(Rabin Ajau)는 전통적인 켁치(Kekchi) 인디안의 축제로 6월 21일부터 26일까지 벌어진다. 독립기념일은 9월에 전국적으로 축하되어지는 행사이다. 11월에 있는 행사로는 제성첨례(All Saints' day)가 있고, 12월 13일에서 21일은 치치카스떼낭고(Chichicastenango)에서 산또 토마스(Santo Tomás)를 추도하는 행사가 있다.

여행자 정보

비자 : 비자 규정이 1996년 바뀌어 대부분의 국가들이 비자나 여행자 카드가 필요없게 되었다. 나라별로 다르지만 30일에서 90일까지 체재할 수 있다. 몇몇 국가의 경우는 아직도 비자나 여행자 카드가 필요하기도 하며 과테말라의 대사관을 통해 최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보건위생 : 콜레라, 뎅구열(dengue fever), 말라리아
시간대 : 한국보다 9시간 앞이다.
전압 : 110V, 60Hz
도량형 : 미터법 (도량형 환산표 참조)

경비 및 환전

통화 : 케찰 (quetzal)
일반경비 :
저렴한 숙소: US$6-10
중급 호텔: US$10-20
고급호텔: US$20 이상
저렴한 현지 식사: US$3-4
중간 가격대의 레스토랑 식사 : US$5-7
최고급 레스토랑의 식사: US$7 이상

과테말라는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싼 나라 중 하나이다. 식사 한 그릇에 US$2 미만으로 해결할 수 있고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과일과 시장에서 정성들여 만든 간단한 식사로 대충 때울 수도 있다. 캠핑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싸고 버스 여행도 한시간에 US$1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좀더 안락하게 호강한다고 해도 욕실이 딸린 방과 두,세끼의 식사를 포함해 하루 US$25로 생활할 수 있다.미국 달러 외에 다른 통화를 환전하려고 해봐야 소용없으며 이웃한 나라들의 통화조차도 환전해 주지 않는다. 다른 통화를 가지고 있다면 플로레스나 과테말라시티 공항에 있는 사설 환전소(casa de cambio)에서 시도해보자. 암시장에서 환전해도 은행보다 그리 높은 환전율은 받지 못하지만 께찰없이 국경을 통과할 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 자동현금 인출기는 과테말라시티에 퍼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은행 창구에서 비자카드를 통해 현금 서비스를 제공한다.식당에서는 10% 부가가치세가 가산된 위에 보통 10% 정도의 팁을 준다. 이 부가가치세에 더해 호텔은 10%의 여행자 세금을 뗀다. 대부분의 호텔과 상점은 가격이 고정되어 있지만 시장에서는 흥정을 하는 편이 좋다  유머감각이나 물건을 제대로 보는 눈을 잃지 말도록 하자.

여행 시기

과테말라에서 외국인에 대해 저질러지는 폭력 범죄는 비교적 높은 수준이므로 여행자는 잠재적인 위험 상황에 대해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버스나 자동차 납치 사고가 꽤 많은 편이며 과테말라의 대도시들은 밤에 어두워진 후 위험성이 있다. 해가 진 이후에 도시간 버스 이동은 피해야만 한다. 유괴,강간, 습격 등이 낮에 일어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여행자들이 단체로 피해를 입기도 한다.

주요 여행지

과테말라시티(Guatemala City)

과테말라시티는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 지역으로 계곡이 금을 긋듯 가로지르는 평평한 산맥을 가로질러 전체 산악 평원을 자치하고 있으며 주위는 골짜기로 둘러싸여 있다. 난폭한 버스운전사들과 무시무시하게 무장한 제복 차림의 인물들에 더해 과테말라시티는 상투적인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중남미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다른 모든 과테말라 도시들처럼 시내 배치는 바둑판모양으로 정렬되어 있어서 아베니다(avenida)라고 불리는 도로가 남북으로 뻗어 있고 그 위를 까이예(calle)로 불리는 거리가 동서로 가로지른다. 거대한 도시는 15개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각의 지역들은 다시 바둑판 모양으로 정렬되어 있다.

도시 안에는 눈에 띄는 식민지 시대 건물도 별로 없지만 그나마 있는 건물들도 행정기관이나 교통기관의 역할 때문에 가게 될 뿐 꼭 보아야 할만한 관광지로서의 매력은 없다. 소나 1(zona 1)에 있는 플라사 마요르(Plaza Mayor)는 일반적인 스페인 식민지 도시 건설 계획의 전형적인 예라고할 수 있으며 시의 여러 행사가 열리고 소매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구경하기 가장 좋은 때는 일요일로 수천명의 현지 주민들이 운집하여 산보를 하거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 벤치에서 키스를 하는 연인들, 커다란 카세트를 가지고 와 살사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나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싸구려 장신구를 파는 노점상들로 가득찬다. 이 광장은 지진에 큰 피해를 입은 인상적인 빨라씨오 나씨오날(Palacio Nacional)과 두개의 탑이 세워져 있는 카떼드랄 메트로폴리따나(Catedral Metropolitana)를 따라 이어져 있다. 1976년, 지진에 의해 광장 근처의 원래 시장 건물이 파괴되고서 생긴 현재의 굉장히 혼란스런 메르카도 센뜨랄(Mercado Central) 시장은 관광객을 상대로한 공예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소나 1 북쪽에는 그늘지고 편안한 미네르바 공원(Parque Minerva)에서 과테말라의 구불구불한 모형 지도를 볼 수 있다. 몇몇 중요한 박물관은 소나 10에 모여 있는데 그 중에는 마야인이나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미술품 등 훌륭한 개인 수집품을 전시한 뽀뽈 부 박물관(Museo Popol Vuh)과 과테말라 고원 마을의 전통 예술이나 의상 등이 풍부하게 전시되어 있는 이스첼 박물관(Museo Ixchel) 등이 있다. 소나 13에 있는 국립 고고 인류학 박물관(Museo Nacional de Arqueología y Etnologí)은 훌륭한 마야 예술품으로 장식되어 있고 국립 현대 미술관 (Museo Nacional de Arte Moderno)은 20세기 과테말라 미술의 걸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내 중심가에서 몇 킬로미터 서쪽으로 간 곳에 카미날리후유(Kaminalijuyú)유적이 넓게 퍼져 있는데 이곳은 초기 고전기 마야 문명의 중요한 유적이다. 불행히도 유적은 상당부분 확장된 도시권역에 덮여 있다.  

과테말라시의 중저가대의 호텔은 대부분 소나 1에 모여 있고 호화로운 호텔들은 소나 10에 있다. 소나 비바(Zona Viva)는 비싼 식사나 춤추며 밤을 보내기 적당한 곳이다.

안띠구아(Antigua Guatemala)

안띠구아는 1543년부터 지독한 지진에 의해 동쪽 45km(28mi) 과테말라시티로 현재의 수도가 이전된 1773년까지 과테말라의 수도였다. 안띠구아는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도시 중 한 곳이다. 세 곳의 웅장한 화산  아구아(Agua), 푸에고(Fuego), 아카떼낭고(Acatenango)- 사이에 자리잡은 이 도시는 16번의 지진과 수많은 홍수나 화재 등을 겪어왔지만 아직도 늠름하게 서있는 멋진 식민지 시대 건축물을 자랑한다. 안띠구아는 거리에 화려하게 색칠한 톱밥들과 꽃잎으로 정성들여 장식한 카페트가 깔리는 세마나 산타 축제 기간 중에 특히 아름답다. 지진 이후 수리와 보수를 거듭하며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사라진 채 방치된 시내의 성당들은 예전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을 대부분 잃고 말았다. 그러나 많은 성당들, 특히 라 메르세드(La Merced), 성프란시스코 교회(Iglesia de san Francisco), 카뿌씨나스 수도원(Convento de las Capucinas, 현재는 박물관) 등은 아직도 인상적이다. 카사 코홈(Casa K'ojom)은 마야 음악과 의식, 그리고 관련 유물 등을 수집해 놓은 매력적인 박물관이며 현지의 묘지를 가보는 것도 마야인들의 신앙에 대해 좀더 깊이 아는데 좋은 방법이다. 일요일에는 여행자들이나 현지 주민들 모두 북적거리는 중앙 시장(Parque Central)에 모여 물건을 사려고 기웃거린다.

치치카스떼낭고(Chichicastenango)

해발 2030m(6658ft)에 자리잡은 안개낀 신비로운 고원 마을, 치치(Chichi)는 계곡에 의해 둘러싸여 있으며 우뚝 솟은 산 그늘 아래 놓여 있다. 비록 외진 곳에 있지만 이 도시는 항상 중요한 시장 도시였다. 일요 시장은 가 볼만해서 코프라디아스(cofradías, 신도 단체)의 주최로 진행되곤 한다. 현지 주민들은 전통적인 마야 종교 의식과 카톨릭 의식을 함께 섞은 의식을 행하는데 이것을 보기 가장 좋은 곳은 산또 또마스(Santo Tomás) 교회나 마야의 대지의 신을 기리는 빠스쿠알 아바흐(Pascual Abaj) 제단 근처이다. 이곳에서는 향, 음식, 음료수를 조상에 바치고 대지의 풍요로움이 계속되길 기원하는 의식이 치러진다. 마을에 있는 지역박물관(Museo Regional)에는 옛날 점토 도기나 토우, 부싯돌, 흑요석으로 만든 창끝, 황색 맷돌 그리고 인상적인 비취 세공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께찰떼낭고(Quetzaltenango)

과테말라 남서부의 상업 중심부인 께찰떼낭고는 수공예품이나 온천으로 잘 알려진 근처의 여러 마을들로 여행을 떠나는데 가장 좋은 출발지이다. 이 도시는 지진과 화산 폭발로 호황이 끝날 때까지 19세기 동안 커피 매매나 보관 지역으로 번창했던 곳이다. 주요한 볼 거리로는 중앙 광장과 그 주위의 건축물들, 유용하지만 기본적인 것들만 갖춘 두세곳의 시장들, 그리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미네르바 공원을 들 수 있다. 미네르바 공원(Parque Minerva)은 고대 로마 신화에 있는 학문의 여신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마누엘 에스트라다 카브레라(Manuel Estrada Cabrera, 1898-1920)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과테말라 젊은이들이 학문적인 열정을 고취시키기 위해 전국적으로 지어졌다. 께찰떼낭고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화산지형의 시골 풍경 안에는 로스 바오스(Los Vahos)나 푸엔떼스 헤오르히나스(Fuentes Georginas)등지의 자연적인 온천들이 있다. 또 가까운 곳에는 엽서 사진에 등장하는 수닐(Zunil) 마을과 샌프란시스코 엘 알또(San Francisco El Alto) 같은 시장 마을, 그리고 수공예품 마을인 모모스떼낭고(Momostenango)등이있다.

플로레스(Flores)

정글로 덮인 북동부 엘뻬뗀(El Petén)의 수도인 플로레스는 라고 데 뻬뗀 잇싸(Lago de Petén Itzá)의 섬 위에 세워졌으며 호수변에 있는 산따 엘레나(Santa Elena) 마을과 500m(1640ft)의 포장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플로레스는 섬 가운데의 언덕을 덮은 중앙 광장 근처에 배치된 교회나 정부 건물들로 한층 더 위엄을 갖춘 수도이다. 이 도시는 잇싸인들에 의해 세워졌으며 스페인인들이 침략했을 당시 과테말라에서 마야의 여러 의식을 치르던 곳으로는 마지막으로 기능을 다하던 도시였을 것이다. 피라미드나 신전, 신상들은 스페인인들이 새로 지은 도시의 기반 아래 모두 뭉개졌으며 정글로 분산해 숨어들어간 마야인들로 인해 '잃어버린' 마야 도시의 신화가 태어났다. 현재의 볼거리들로는 여러 석호를 도는 보트 투어와 악툰-칸(Actun-Can)의석회석 동굴을 방문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빠나하첼 (Panajachel)

이 도시의 별명인 그링고떼낭고(Gringotenango, 외국인들의 마을)가 주는 인상이나, 빠나하첼 안에 식민지 시대 건축물이나 화려한 시장이 없다는 이유로 이곳을 단념하지 않도록 하자. 이 도시의 매력은 정말 멋진 칼데라 호수(원뿔 모양 화산에 생긴 호수)에 있다. 1960년대의 히피 시대부터 느긋한 여행자들은 이곳 라고 데 안띠뜰란(Lago de Atitlán)에 모여 수영을 하며 몸을 식히곤 했다. 호수는 화산에 둘러싸여있고 마을은 서쪽과 남쪽 호수변에 있는 더 작고 전통적인 토착민 마을을 여행하는 출발지역이다. 가장 인기 있는 당일 여행지는 산띠아고 아띠뜰란(Santiago Atitlán)으로 화려한 의상의 현지 주민이나 막시몬(Maximón)이라고 불리는 시가를 피는 독특한 신 등이 볼거리이다. 시장 마을인 솔롤라(Solol&aacute)는 몇세기동안 장삿꾼들이 모이던 곳으로 마을의 중앙 광장은 항상 웅성거리는 장터가 되어왔다. 산따 카따리나 빨로빠(Santa Catarina Palopá)에서는 시골 마을의 생활을 잘 볼 수 있으며 호수변의 산뻬드로 라 라구나(San Pedro La Laguna)는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곳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산따 루시아 콧수말구아빠 (Santa Lucía Cotzumalguapa)

태평양쪽 경사면에 자리잡은 이곳은 마야 예술과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가 볼만한 곳이다. 사탕수수밭에는 선명하게 조각된 커다란 머리 모양의 석상과 풍경들이 군데군데 퍼져 있다.이 유물들은 마야 인디안이 아닌 중앙 멕시코의 나우와뜰(Nahuatl) 말을 사용하는 인디안들과 관계있는 삐삘스(Pipils) 인들의 유물이다. 사탕수수 농장(fincas)을 둘러싸고 세곳의 중요한 고고학적 유적들이 있다. 빌바오(Bilbao)는 대부분이 사탕수수 사이에 가려져 있는 석상들을 포함한 몇곳의 의식이 치러지는 장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언덕 위의 핀카 엘 바울(Finca El Baúl)은 아직도 예배를 드리는 장소이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며 핀카 라스 일루시오네스(Finca Las Ilusiones)는 몇세기에 걸쳐 이 지역에서 수집된 수백개의 유물을 가지고 있다.

띠칼(Tikal)

기념비적인 마야의 의식 장소인 띠칼은 엘뻬뗀주의 플로레스 북서쪽에 있다. 띠칼은 정글 안에 위치한 독특한 유적이다. 높은 피라미드는 녹색으로 뒤덮인 정글위로 치솟아 있고, 그 아래에는 짖는 원숭이들이 원시 우림의 나뭇가지 사이를 시끄럽게 옮겨 다니며, 색색의 앵무새들이 깍깍 울면서 지나가거나 간간이 청개구리 울음 소리도 들린다. 가파르게 세워진 신전들은 44m(144ft)나 솟아 있고 비록 근처의 덤불은 깨끗이 치워졌지만 멀지 않은 곳에 울창한 열대 우림이 있어, 신비로운 띠칼의 유적을 지나며 본 모든 것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만들어 준다. 이곳의 많은 유적들에는 광장이나, 언덕, 피라미드, 신전과 박물관 등이 포함된다.  

리빙스톤 (Lívingston)

정글 속에 느긋하게 숨어 있는 리빙스턴은 카리브해의 항구인 뿌에르토 바리오스(Puerto Barrios)에서 갈 수 있다. 가리푸나(Garifuna)라고 불리는 아프리카 출신 과테말라 흑인들이 이 섬에 살고 있는데 이들은 주로 아프리카에서 끌려와 탈출하거나 난파 당한 노예들의 후손이다. 다른 인종의 난파 당한 선원들이나 토착 마야인들과의 결혼을 통해 아프리카, 마야, 유럽 등의 여러 요소가 섞인 독특한 문화와 언어가 생성되었다. 작은 리빙스턴은 흥미롭고 예외적인 곳으로 과테말라인들보다 벨리세인들에 가까운 생활 양식을 가지고 있어 코코넛 밭이나 나무 건물에 그려진 흥겨운 그림들, 그리고 어업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간다. 이 마을로부터 리오 께께체(Río Queqüeche)와 리오 코콜리(Río Cocolí)로 출발하는 보트를 타면 열대 정글에서 수영이나 소풍을 즐기거나 카요스 사뽀디야스(Cayos Sapodillas)로 스노클링이나 낚시를 떠날 수도 있다.

레저스포츠

마야와 관련된 유적을 돌아보는 것 이외에도 과테말라는 라고 데 안띠뜰란과안띠구아를 둘러싼 고원이나 화산 등지에서 멋진 하이킹과 등반을 할 수 있다. 과테말라시티에 있는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특정 지역의 치안 상태에 대한 정보를 반드시 얻고 가는 것이 좋다. 띠칼 국립 공원이나 라고 데 안띠뜰란 근처에서 조류를 관찰할 기회가 생기면 과테말라를 상징하는 새인 께찰을 찾아보도록 하자. 안띠구아나 께찰떼낭고에서는 스페인어 연수가 인기 있다.

과테말라로 가는길

주요 국제선 항공편이 과테말라시티나 플로레스로 취항한다. 대부분의 항공편은 북미의 교통 중심지인 달라스/포트워스, 로스앤젤레스 또는 멕시코시티 등을 지난다. 공항에서는 US$10의 출국세가 부과된다.

국내 교통편

불행히도 과테말라의 국내선 비행기는 과테말라시티와 플로레스만을 연결한다. 버스는 싸고 비교적 불편하지 않게 대부분의 지역을 연결하지만 엘뻬뗀 주의 길들은 종종 진흙탕으로 변하거나 우기가 되면 길이 아예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좀더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지역들 사이에는 미니버스가 운행되기도 한다. 과테말라의 국립공원 중 몇 곳은 오직 배로만 갈 수 있다.